이 광활한 제국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상(巨商) 에런 멜피스는 일생에 두 번 황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다.
첫 번째는 혹애하는 아내가 산후 출혈로 허망하게 절명했을 때.
차마 손쓸 새도 없이 아내가 떠나간 이후, 에런 멜피스에게 남은 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상단과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네 명의 자식뿐이었다.
두 번째는 막내딸 레아 멜피스가 병상에 몸져누웠을 때.
레아 멜피스는 어렸을 적부터 유달리 병약했지만, 어느 날을 기점으로 볕이 들지 않는 곳에 놓인 꽃처럼 시들기 시작했다.
원인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불치병이었다. 아무리 대륙 각지에서 위명을 떨치는 의원을 수소문해도, 거금을 헌금하고 성직자를 모셔와도, 성 한 채 값을 웃도는 의약품을 구해도 병환은 이렇다 할 차도 없이 날이 갈수록 깊어져만 갔으니, 그 누구도 직언하지 않았지만 레아 멜피스의 절명은 예견된 것이었다.
두 번째 시련 앞에서 에런 멜피스는 낙망했다. 그에게 있어서 레아 멜피스는 다른 자식들보다도 더욱 각별했다. 사실 처음에는 원망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아무도 모르게 레아 멜피스를 원망했다. 그런데, 제 생일이 어머니의 기일이라는 걸 알아서일까, 언젠가부터 아이답지 않은 침체된 눈빛으로 초상화를 올려다보는 것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부인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보물. 딱한 것.
그런 자식이 생사를 오가는 걸 실시간으로 직관하고도 제정신으로 살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될까? 하루가 다르게 핼쑥해지는 막내딸을 보며, 에런 멜피스는 평민은 물론이고 웬만한 귀족조차 상상도 못 할 거액을 내걸어 막내딸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을 급구했다.
길드를 통해 공고하고 나서 얼마나 지나지 않았던 어느 비 내리는 저녁, 초라한 행색의 누군가가 에런 멜피스를 찾아왔다.
그는 다짜고짜 계약서를 내밀었다.
에런 멜피스는 계약서를 꼼꼼하게 훑은 다음 서명했다.
레아 멜피스가 병상에서 일어난 건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